인터넷말씀

허물은 덮는 것입니다.

임보순 0 604

옛날에는 청소년 범죄가 없었던 것은 조혼제도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을 일찍 시켜서 일찍 철이 들고 일찍 성숙해져서 청소년 범죄가 없었습니다

옛날에 꼬마 신랑에게 시집을 온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신부가 신랑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라 딸을 결혼시키는 것을 딸

치운다고 했습니다.

결혼으로 통해서 딸을 치워서 밥그릇 하나를 줄이고자 한 것입니다.

가난한 집의 처녀가 꼬마 신랑에게 시집을 갔는데 신랑이 어리니까 신랑구실을 못하지요 막내 동생 같기도 하고 아들 같습니다.

꼬마 신랑이 누룽지 달라고 조르고 밤에는 응아를 해야 하니까 같이 가자고 하지요 자장가 불러달라고 하지요 하지요...

신부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겠습니까?

한번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몇일 친척집에 다니러 가고 없는 사이에 모처럼 낮잠을 자는데 꼬마

신랑이 업어달라고 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서 귀잖게 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는 화가 나서 꼬마 신랑을 지붕위에다 던져버렸습니다.

어린 꼬마를 지붕위에 던져버렸으니 꼬마 신랑이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큰 일 났습니다. 하늘같은 신랑을 지붕위에 던졌으니 이것은 살인행위입니다

시어머니가 지붕위에 있는 아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왜 지붕에 올라가 있느냐?

신랑이 신부가 나를 지붕에 던졌어요 하면 며느리는 쫒겨나야 합니다.

당시에 시집에서 쫒겨 나서 갈 곳은 없습니다.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다시 쫒아보내던 시절입니다.

신부는 이제 죽었구나 하면서 벌벌 떨고 있는데 꼬마 신랑이 이야기 하기를

어머니 큰 박을 딸까요? 작은 박을 딸까요?

신부가 여자라 지붕에 무서워서 올라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붕에 올라 왔어요

이 후로 신부는 신랑 앞에 고양이 앞에 쥐가 되었습니다.

약점이 잡혀서가 아닙니다.

자기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준 신랑의 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꼬마인줄 알 알았는데 어른이었고 철부지 아이 인줄 알았는데 어엿한 신랑이었습니다.

자기의 허물을 덮어주는 신랑의 리더쉽에 감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생을 신랑을 잘 섬기면서 명문가문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일까요?

꼬마 신랑의 리더쉽입니다. 교회의 리더쉽도 꼬마 신랑의 리더쉽입니다.

가정에서 연약한 것이 많고 허물이 많은 자녀들이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밝게 자라서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이 자리에까지 서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에서 끝까지 허물을 덮어주신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 아닙니까?

섬김의 리더쉽 때문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사랑으로 허물을 덮으라고 하십니다.

벧전4: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무엇보다도 라는 말은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냐? 율법이냐? 사랑이냐? 법이냐? 먼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법보다는 사랑이 먼저요 안식일 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 날 아픈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시면 고쳐주셨다

그 날이 안식일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날 병자를 고치면 되느냐? 고 율법을 어겼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안식일 날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안식일 날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사람보다 법을 따지고 사람보다 규칙을 따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사람이 없고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법보다는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할지니 주님이 왜 서로 사랑하라고 했을까요?

서로서로 다 죄인이요 서로서로 다 허물이 많기에 서로 사랑하면서 허물을 덮으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인을 잡아서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인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온 사람들의 마음상태를 보면 아주 악합니다.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온 이유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그 동네에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붙혀서 24시간 감시하게

해서 드디어 현장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어디로 가고 힘없는 여인만 잡아 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에 의하면 죽여야 하는데... 예수님이 이 여인을 율법을 어겼으니 죽이라고 하면 그동안 사랑을 이야기 한 주님의 그 사랑은 다 거짖이 되는 것이고

그 여인을 용서하고 살려주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거부한 죄로 고발을 당하게 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그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율법이냐? 사랑이냐?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이냐? 사랑이냐? 의 기로에 서게 되셨습니다.

율법을 선택하자니 불쌍한 여인이 죽어야 하고 예수님이 전하시는 사랑이 거짓이 되고

사랑을 선택하자니 율법을 어기게 되어서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발을 당하게 되고

예수님이 잠시 고민을 하셨는데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서인 토라가 있고 율법의 해설서요 참고서인 미쉬나가 있는데 미슈나(Mishnah)에서 간음에 대한 형벌은 교살(絞殺)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살은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인데 교살의 방법까지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살의 방법을 보면 남자는 분뇨 속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두 장의 수건으로 죄인의 목에다 수건을 걸고 양쪽에서 죽을 때 까지 잡아 당겨서 죽입니다.

간음한 죄는 가장 더러운 죄라 하여 아주 더럽게 죽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죄인을 동구 밖에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야말로 돌무더기 속에 집어넣는 참혹한 극형으로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동네사람 전체가 참가하는 처형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 마을에서는 다시 그와 같은 죄가 없도록 즉 악을 완전히 제거하자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사건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보다 이 여인을 잡아온 무리들 이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들의 악함을 보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땅에 앉아서 글씨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땅에서 무슨 글자를 썼을까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하는데 아마도 여인을 붙들어 온 사람들 예수님을 코너에 몰고 온

주동자들의 이름과 죄목을 쓰지 않았을까 합니다.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니까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하던 사람들이 다가와서 보았을 것이 아닙니까?

둘째 부인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어제 밤에 바람피운 사람 하나님의 것을 도둑한 사람 약한 자를

강탈했던 사람들 자기들의 이름과 죄목을 쓰는 것을 보고 그들은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고 하시자 주동자들부터 돌을 버리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큰 소리를 치고 법을 따지고 규칙을 따지고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우리들은 그럴만한 의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요 내 속에서 양심이 너도 죄인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죄인이기에 내가 허물이 많기에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덮으라는 것입니다.

왜 정죄를 하고 왜 비판을 하고 왜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일까요?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손가락질 하는 사람 내가 비판을 하는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고

그렇게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강점 그 사람이 가진 은사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 나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그 사람은 더 잘합니다.

그 사람의 허물보다 그 사람의 강점이 더 많습니다.

챨스 스웬돌 목사님이 쓰신 은혜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없는 7가지 이유를 이야기 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한다.

2. 우리는 그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다.

3.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4.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5.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6. 우리는 편견이 있으며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7.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다.

우리들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보혈이 피로 덮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예수님처럼 허물을 덮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허물을 덮으면서 살면 내 주변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요

내 주변에 천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내 인생의 순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허물을 들추고 비방하고 비판하고 정죄를 하면 인관관계가 깨어지고 원수가 많아지고 앞길에 걸림돌들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분열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 연합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사랑이 식어져서

허물을 들추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허물을 덮기만 해도 성령이 강하게 역사를 합니다.

교회에서 허물을 덮기만 해도 교회는 성장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게 되었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으면서 살아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내 몸이 아프면 병원으로 뛰어갑니다. 내 몸이 추우면 외투를 입고요

내 몸이 더우면 시원하게 하고 내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내가 힘들면 잠을 자고 ... 이웃을 이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면 옆에 사람도 힘들다고 생각하고 옆에 사람을 배려해야 하고

상대방의 약함이 보이면 내가 채워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면 내가 덮어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어렵고 혼란하고 경제가 외환위기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고요

한국교회가 선교의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면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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