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2006-05-14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교회<히10:37-39>

임보순 0 1584
 세계적인 거부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라는 사람은 자기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사업을 위해 가장 많은 재산을 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빌게이츠는 '생각의 속도' 라고 하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80년대를 퀄리티(Quality)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얼마나 땅이 많고 종이 많고 재산이 많으냐? 에 따라 승부가 결정이 났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0년에 와서는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시대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지식과 기술을 따지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 기술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고 세상을 다르렸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는 스피드(Speed)시대라고 했습니다. 

속도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속도에서 지면 도퇴하고 맙니다.

인력거라는 것도 마차가 나타나자 사라지고 말았고 마차도 자동차가 나오므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동차도 기차가 나타남으로 밀려났고 그렇게도 빠르던 기차 새마을호도 고속전철의 등장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렇게도 화려하던 비둘기호는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속도에서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사실 지금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부터 속도에서 지면 모든 것에서 졌습니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 말을 타는 사람을 따라지 못하고 머리가 둔한 사람이 머리가 뛰어난 사람을 따라잡지 못하고 세상의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빠릅니다.

자판기 앞에서도 보면 외국 사람들은 자판기 버턴을 누르고 기다렸다가 빨간 불이 꺼지면 컵을 꺼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턴을 누르고 컵이 위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을 넣고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가끔 뜨거운 커피에 손을 데기도 합니다.

식당에 가도 외국 사람들은 여기서 제일 잘하는 음식이 뭡니까? 라고 묻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서 제일 빨리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빨리 빨리 주세요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이것만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빠른지 나타납니다. 라면의 종류를 보면 숫자대로 있습니다.

1분라면 2백냥 삼양라면 사발면 오백냥 육개장 칠칠면 팔도라면 열라면

인터넷 보급률도 세계 1위입니다.

이렇게 빠른 성격 밀고 나가는 성격 때문에 한국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은 전진하라 앞으로 가라는 말씀은 많이 하셨지만 뒤로 물러서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면요 늘 적극적인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는 자 마음이 앞서고 생각이 앞서고 행동이 앞서는 자들을 하나님이 들어 쓰셨습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는자 미온적인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에서 머뭇거리는 자들을 통하여서는 역사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남들보다 생각이 앞서고 비젼이 앞서고 믿음이 앞선 사람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남들보다 앞서서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여호수아를 들어서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머뭇거리는 자요 신앙적으로 퇴보하는 것이요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히10:38절에 보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뒤로 물러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기에 반드시 수치를 당하고 화를당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뒤로 물러서고 내려가다가 낭패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룻기서를 보면 엘리멜렉의 가족이 나오는데 엘리멜렉의 가족은 흉년이 들었다고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배불리 먹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을 떠났고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떠났고 눈에 보이는 순간적인 것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간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이 죽고 졸지에 3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난 심령이 얻는 것은 수치와 눈물이요 불행과 슬픔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갔던 사람이 만난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등지고 여리고로 내려갔던 사람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물질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몸만 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품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서 세상으로 내려가면 얻는 것은 눈물과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고 말씀 중심으로 살고 위엣 것을 바라보면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이 내려가고 후퇴하면 수치를 당하게 되고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늘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전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전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유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지파의 두령들이 아멘으로 순종했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해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는 주저 없이 순종하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법궤위에 머문 구름이 떠 오르면 그 구름을 따라 전진했습니다.

아무리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아무리 열악한 기후조건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일어나 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진하고 올라갈 때 결국 그들이 그렇게도 사모하던가나안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다고 배가 고프다고 뒤를 돌아보며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던

사람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전진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 넘어지지 않고 달려갈 때 힘들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배웠는데요 우리 아버지가 보시더니  저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자전거 타는 것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자전거에 태우고 저는 뒤에서 붙들고 자전거를 가르키는데 처음에는 넘어집니다. 그래서 자전거가 한쪽으로 기울더라도 몸은 바로 세우고 핸들만 넘어지는 쪽으로 약간 틀었다가 반대쪽으로 틀면 됩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연습을 하다가 보니까 원리를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는데 그래도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잡고 가던 제가 돌 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놓쳐 버렸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가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일어나서 아무리 달려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전거가 갑자기 속력을 내니까 아버지는 너무나 당황해서 브래이크 잡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내리막길을 달려가는데 이상하게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전거가 평지에 도착하면서 속력이 떨어지면서 그때서야 자전거가 개울창에  쳐 박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제는 나는 죽었다. 자전거 못탄다고 아버지를 구박하지를 않았나?

결국 아버지를 내리막길로 밀어버렸으니 이제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겁에 질려서 아버지 쪽으로 갔더니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는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야 재미있다 한번 더 하자 하면서 자전거를 끌고 언덕 위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이제는 자전거를 마스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는 속력을 내어야 넘어지지 않고 가속도가 붙어야 쉽게 달릴 수가 있습니다.

자전거는 천천히 가면 넘어지지가 쉽고요 정지하는 순간 곧바로 넘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힘을 내어서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열심을 내면 낼수록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예수 믿는 재미가 나고요 열심을 내면 낼수록 영적인 기쁨이 있고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올라가면 갈수록 열심을 내면 낼수록 몸이 건강해 지고 마음이 건강해지고 하는 일들이 잘되는 것을 느낍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사업도 잘 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사업이 불일듯 일어나면서 비상하고 올라갈 때가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신앙이 올라가던 때라는 것이고 교회가 부흥할 때 자기의 사업도 함께 성장해 가더란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지고 신앙이 침체되니까 사업도 함께 위축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고 일이 꼬이더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신앙이 올라가고 믿음이 올라가면 그와 함께 우리들의 삶의 질도 올라가고요 우리들의 삶의 지경이 넓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대충대충 믿게 되면 시험이 그칠 날이 없고요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게 미지근하게 미온적인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생활이 힘들고 피곤할 뿐만 아니라 무슨 것이 후퇴하고 맙니다.

믿음이 날마다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지 내려가는 삶 후퇴하는 삶을 살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기쁨과 평안 그 나마 가지고 있던 믿음과 사명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등산을 할 때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듭니까? 내려오는 것이 힘이 듭니까?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학교성적도 올릴 때는 힘드는데 떨어지는 것은 쉽습니다. 사업도 그렇고 신앙도 다그렇습니다.

올라갈 때는 애쓰고 수고해야 하는데 내려가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내려갑니다.

보세요 가만히 있어 보세요 자동적으로 내려갑니다.

가만히 있으면 성적도 내려가고 가만히 있으면 사업도 내리막길을 걷고요

가만히 있으면 신앙도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언덕 위를 올라가는 수레에다 비유를 합니다.

언덕 위를 올라가는 수레가 정지해 있으면 그 순간부터 밑으로 굴러 내려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섰다고 생각하고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쉬는 동안 넘어지게 되고 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정지가 없고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 합니다.

아이고 이제 좀 쉬고 싶어요! 너무너무 힘들어도 충전이 필요해요 올해만 쉴께요!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쉬면서 충전하는 사람 못보았고요 그렇게 쉬면서 신앙이 좋아진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올해만 찬양대 쉴께요 그런 사람은요 3달도 안되어서 눈에 보이게 게으르고 나태해지고요 신앙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내려가기시작하고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형편없이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것 게으름이라는 것은 에스칼레이팅(Escalating)과 같습니다.

백화점에 가면 에스칼레이팅이 있는데 거기에 타면 가만히 있어도 힘들이지 않고 자동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상승 작용을 해서 점점 더 게을러집니다.

여러분 잠을 자보세요. 스물네시간 다 자도 모자랍니다.  잠이라는 게 끝이 없어요

먹고 잠이나 자는 백수들에게 물어 보세요

늘 잠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고도 몸이 찌푸등하다고 합니다.

뛰어다니면서 일하는 사람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실실 걸어 다니면서 일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면 뛰어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걸어 다니는 일을 시켜 보세요 처음에는 좋아라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서서 일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래서 서서 일하게 하면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보이고요

앉아서 일하게 하면 편하게 다리 쭉 뻗고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다리를 쭉 뻗고 일하라고 하면요 잠시만 누워서 쉬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 누워서 쉬라고 하면요 코를 골로 잠을 잡니다.

자는 것보다 편한 것은 영원히 잠드는 것이 편합니다.

사람이 게으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요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일주일 내내 새벽기도 하는 사람에게 하루만 푹자라고 해 보세요

얼마간은 행복해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이틀만 쉬었으면 그러다가

일주일 내내 쉬라고 해도 잠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덥다고 불평불만을 터트리자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을 보내어 시원하게 해 주셨습니다. 밤이 되자 이번에는 춥다고 불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보내어 따뜻하게 해 주셨습니다.

목이 말라 죽겠다고 해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만나를 내려주시니까 이제는 매일 만나만 주느냐? 우리도 고기좀 먹자 광야에서 고기를 달라고 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자 이제는 매일 같은 것만 먹어야 하느냐?

우리도 시원한 수박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속에 있는 육신이 요구하는 것과 타협하면 끝이 없습니다.

육신이 편하자는 데로 하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힘이 들다고 하나둘 놓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믿음을 놓아야 하고 결국 천국도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밀고 나가면 나중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어 버리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성장하고 성숙해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어느 경지에 도달해야 영적인 기쁨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어느 정도 올라가면 가속도가 붙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고요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가는데 까지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느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힘이 들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간이 투자 되어야 하고 물질이 투자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에너지가 투자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신앙의 높은 경지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좁지만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가다가 보면 넓은 길이 보이고 영광의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행기를 보세요

그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300톤이 넘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 큰 비행기가 300km의 속력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 엄청난 기름을 쏟아 붓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모든 동력을 여기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여기에 집중하며 기름을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모든 승객들도 안전벨트를 매고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요 모든 승무원들과 조종사들도 숨을 죽이며 그 순간에 집중합니다.

그 짧은 이륙시간에 많은 것을 집중하고 많은 것을 투자합니다.

그 큰 비행기가 300km의 무서운 속력으로 굉음을 울리며 달리다가 그 속력과 부력으로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그러면 비행기가 높은 창공을 향해 높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을 해서 일정한 고도에 올라가면 비상해제들이 꺼집니다.

그러면 승객들도 안전벨트를 풀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화장실을 가도 되고요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일정한 고도에 올라가면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 조종을 하고요 사람들이 자유를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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