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2006-05-07  미래를 위해 말씀에 집중하는 교회

임보순 0 1449

미래를 위해<말씀에 집중하는 교회>여호수아1:7-9

미래학의 대가인 앨빈 토플러라는 사람은 “권력의 이동” 이라는 책을 통하여

권력은 시대에 따라서 이동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도 추구하는 힘이라는 것, 권력이라는 것, 명예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주먹이 센 사람, 힘이 센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에 돈을 가진 사람에게로 권력이 이동되었습니다.

주먹을 쓰던 시대, 무인시대가 막을 내리고 부를 가진 사람들의 시대가 등장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돈을 가진 자들이 주먹을 쓰고 칼을 쓰는 사람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많이 배운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게 지식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세상은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따라 권력이 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 아무리 지식이 있는 사람도 지혜가 없으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보세요 그 사람이 지식이 있고 역량이 있어서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 지혜가 없어서 낙마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식이 지식되게 하는 것 지식이 정말로 권력이 되게 하는 데는 지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라는 기초위에 지식과 기술이 쌓아질 때 비로서 이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되고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은 세상적인 것으로서 책을 통하여 스승을 통하여 배워서 얻는 것이지만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는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잠9: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고 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지식과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지혜로 인하여 물질을 얻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축복도 따르고 권력도 따른다는 결론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나자 여호수아가 이제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전쟁을 한번 하는 것도 나라가 휘청거리고 위기가 오는데 가나안 정복전쟁은 얼마나 많이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고 이스라엘민족의 미래가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염려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와에게 말씀하시기를 7절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인간적인 이성이나 경험에 치우치지 말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치우쳐 걱정하고 염려하며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오직 말씀만 앞세우고 나아가라

그러면 내가 너의 앞길을 책임지고 형통하게 하리라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말씀을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보면요 이성과 경험에 치우쳐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감정과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않 좋다고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요

사람이 보기 싫어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요 이러한 것은 치우치는 삶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라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살라는 것이요 정도를 걸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원어로 ‘캐논’으로서 ‘자‘기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기준이요 잣대요 길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살고 말씀의 잣대로 살아야지 내 이성과 경험에 따라서 살고 내 형편과 상황에 따라서 양심을 속이고 말씀을 벗어난 삶을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감정과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중심을 지키고 말씀의 정도를 걸어갈 때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7절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자동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자동문은 어떻게 하면 열립니까? 물론 자동으로 열립니다.

그런데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죠 그 문을 향해 바로 들어갈 때

그 문을 향해 정도로 들어갈 때 문이 열리게 됩니다.

아무리 굳게 닫힌 문이라고 해도 아무리 거대한 문이라도 해도 그 문을 향해 정면으로 들어가면 그 큰 문이 시원하게 열립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 문을 향해 들어가면 문은 열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살면서 우리 앞에 태산 같은 장애물이 가로막혀 있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 가로 막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만 앞세우고 나가면 그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왜 장애물 앞에서 낙심하고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염려하며 고민하고 있습니까?

장애물이 있고  걱정과 염려거리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러면서 말씀을 읽고요 시간마다 말씀을 듣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나가면 장애물이 없어지고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만 붙들고 나가면 우리 앞에 가로 막힌 홍해가 갈라지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무너질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내가 당하는 고난이 문제가 아니고 내 당한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걷고 의의 길을 걷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도를 걷느냐? 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들이 정도를 가도록 그냥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축복의 길에서 끌어내리고 우리들을 정도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항상 우리를 치고 흔들고 빼앗습니다.

마귀의 속성 사탄의 작전은 늘 동일합니다. 처음에는 치고요 그리고 막 흔들어서 나중에는 빼앗아 버립니다. 그럴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안됩니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수석을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가치 있는 수석은 한눈에 띄어서 그것을 탐을 냅니다. 그래서 그것을 뽑아가려고 먼저 발로 툭 쳐봅니다.

그러면 수석이 흔들거리면 이쪽에서 차고 저쪽에서 차서 흔들어서 뽑아서 갑니다.

그런데 한번 발로 툭 찼는데 흔들리지 않고 요동이 없으면 포기하고 갑니다.

그래도 욕심이 나면 한번 더 차보고 몇 번 차봅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으면

아 큰 돌이구나 생각하고 포기하고 갑니다.

그런데 한번 차고 두 번 찰 때 흔들거리거나 요동을 하면 계속해서 흔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뽑히게 되는 것이죠

사탄의 전략이 이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 보이는 사람 금보다 귀한 믿음이 있고 뭔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을 보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사탄이 믿는 자들을 한번씩 쳐 보는데 건강을 쳐보기도 하고 물질을 쳐보기도 하고 자존심도 건드려 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사람의 약한 부분을 쳐 봅니다.

그럴 때 흔들거리거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버리면 사탄이 결국 흔들어서 믿음도 빼앗고 물질도 빼앗고 하늘의 기쁨과 평안도 빼앗고 사명도 빼앗아 버립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이 치고 흔들 때 흔들리면 안되고 치우치면 안됩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아플까?  믿음으로 사는데 왜 이렇게 일이 안되지

기도하는데 일이 안풀리지? 왜 저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하지?

내 자녀들은 왜 이럴까?

그럴 때는 아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보다 아 사탄이 나를 알아보는가 보다

아 이제 나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가 되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흔들리거나 치우치면 안됩니다.

아무리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온다고 해도 욥처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지니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정도를 걸을 때 갑절의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를 보세요

여호수아는 자신의 부족을 알기에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기에 말씀만 붙들고 살았고 말씀만 앞세우고 나갔습니다.

여호수아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져 말씀만 읽고 말씀만 앞세우고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말씀이 서라고 하면 서고 말씀하는 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가는 곳마다 적들이 백기를 들고 항복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100%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길이 평탄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면 다 지켜 행할 때 우리의 앞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요 형통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50%가 아니고 80%가 아니고 100% 순종할 때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기 전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하게 보세요

언제 기적이 일어나고 언제 길이 열리고 언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되고 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능력 받는 것 기도하는 것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예스라고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멘입니다.

계3:14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아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무조건 아멘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멘으로 시작해서 아멘으로 끝마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가라고 하시자 아멘 십자가를 지라고 하자 아멘

죽으라고 하시자 아멘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고향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시자 아멘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자 아멘

모세도 마찬입니다.

애굽으로 가라고 하자 아멘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들라고 하시자 아멘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멘

그것을 지켜보던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로 100% 아멘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넘실거리는 요단강을 건녀야 합니다.

요단강이 범람하여 넘실거리는데 하나님께서 법궤를 맨 제사장이 제일 앞에서고 넘실거리는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법궤를 맨 제사장을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한번생각해 보세요 홍수가 나서 잠수교가 다 잠기고 무서운 기세로 흐르는 한강을 건너라고 하면 건너겠습니까?

그런데 법궤를 맨 제사장을 앞세우고 건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맨 제사장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가는 그들에게 가나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이었지만 그에게는 문둥병이 들어서 좋다는 명의 좋다는 약 다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고 죽어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와 나아만의 집에서 일하는 소녀가 사마리아에 가면 엘리사 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분은 못고치는 병이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오자 엘리사는 밖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말하기를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나서 호통을 쳤습니다.

괘심한 놈 내가 누군줄 알고 그러느냐고 이 나라의 왕도 나와서 나를 영접하였는데 선지자 따위가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내가 먼 길을 왔으면 나와서 안수 기도를 하든지 예배를 드리던지 뭔가 성의를 보여야지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아  내가 요단강에 목욕하려고 이곳까지 왔는지 아느냐 우리나라에는 요단강물 보다 더 깨끗하고 좋은 온천들이 얼마든지 있다.

생각 같아서는 한칼에 목을 베고 싶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라 그냥 간다 하고

말머리를 돌리려고 하는데 그러자 나아만의 종이 말하기를 왜 각하! 그러십니까? 문둥병만 고칠 수 있다면 더 한 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곳까지 왔는데 한번 해 보고 가십시오 밑져봐야 본전 아닙니까?

믿음 있는 종의 권유로 나아만이 요단강물에 들어갔습니다.

 차가운 강물 더러운 강물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두 번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기를 일곱 번 일곱 번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데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고

어린 아이 피부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시시 때때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계집종을 통하여 때로는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 순종이 안되기에 믿음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할 때 100% 순종해야 합니다.

1번으로 안되고 2번으로 안되고 7번 100%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만 나타나는 기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일어나는 기적들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저를 통하여 일어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한번은 대 심방이 되어서 심방을 하는데 안수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덕분에 제가 외 손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딸이 결혼을 한지 5년이 되었는데 아이가 없어서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외 손주 보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그 집사님왈 임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황충을 금하여 주시고 기한 전에 떨어지는 열매가 없게 하신다는 말씀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한 기억이 없는데 아마 설교 중에 그 말씀이 슬쩍 던져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말씀을 듣다가 그 말씀을 붙든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내 딸이 어렵게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했는데 기한 전에 떨어진 열매가 아닌가?

그래서 밤에 일산에 사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너희들 십일조 생활하느냐? 예

건성으로 이야기 하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느냐 말이다. 그러자 머뭇거린다. 살기 어려워서 주택부금도 들고...

무슨 소리를 하느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예 다음달 부터 할께요

아니다 이번 달부터 해라 그래서 그 다음날 교회 가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임신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까 둘째가 또 들어섰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역사가 일어나고요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 그 약속을 붙들고 순종만 하면 그 약속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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