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마당

부활절을 보내고

C장로 0 952

 *  그동안 하나님의 섭리로 은혜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어제 교회에서 부활절 동영상을 보고 저의 글 한편을 올립니다.

-------------------------------------------------------------------------------------------------------------------------

조형물에 숨은 사연들 


  “웬 교회가 저렇게도 많아!”,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 무덤의 나라야!”


  우리나라를 찾아 온 외국인의 눈에 신기하게 비쳐지는 풍경이 두 가지라고 들었다. 먼저, 산야에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무덤들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흡사 헌데 나서 탈모된 자국처럼 어느 산야를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 울룩불룩 혹 같은 무덤들이 널려있다. 오래 전 시신은 납골당으로 보내고 비석들만 모아놓은 일본의 어느 시골 공동묘지를 보고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바로 십자가로 메워진 도시의 야경이다. 한국의 도시풍경은 한집 건너 술집이고 한집 건너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교회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술 마시고 지은 죄를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서 회개한다.’ 라는 우스개가 나올 법도 하다. 하여튼 도시의 밤을 밝혀주는 수많은 붉은 십자가는 분명히 한국만의 특별한 풍경임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도시의 밤하늘을 수놓은 그 무수한 십자가에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의 사연이 있다. 몇 해 전, 멜 깁슨이 만든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 ; Passion of Christ’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십자가의 처형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잔인함은 오히려 그 이상이다. 우선 5~7인치 쯤 되는 못을 손목에 박는다. 이유는 손바닥에 박으면 몸무게로 인해 찢어지기 때문이다. 이후 십자가를 세우면 몸무게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깨는 탈골이 되고 팔의 근육은 약 6인치 쯤 늘어난다. 물론 포개놓은 발목에는 또 못을 박는다. 이렇게 되면 못 박힌 고통과 더불어 사람은 서서히 질식하여 죽게 된다. 왜냐하면 근육의 긴장으로 가슴의 횡격막이 숨을 들이 쉬는 상태로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발을 세워야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발목에 박힌 못은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숨쉬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오히려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져 더 이상 발을 세울 수 없게 만든다. 결국은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굶주린 개들의 밥이 된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기독교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랄 수 있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만분의 일도 전하지 못한다. 프랑스의 기요틴이나 중국의 궁형, 조선시대의 압슬, 주리,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능가하는 잔인한 처형이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종교라고 말한다. 그 십자가의 피가 바로 생명구원의 사랑으로 승화되어 수천 년 인류의 역사 속을 흘러내렸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통이 평안을, 십자가의 희생이 구원을, 십자가의 죽음이 영생으로 되살아난다는 위대한 가르침을 인류에게 남긴 종교다. 그러므로 한국의 밤하늘, 대도시의 거리마다 골목마다 솟아있는 붉은 십자가는 단순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아니다. 여기에 교회가 있다는 알림판도 아니다. 십자가는 처절한 고통 없이는 그 어떤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진리, 그 가르침의 표상인 것이다.

 

  물론 십자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불교의 약사여래불은 가난한 중생들에게 치병(治病)의 희망을 준 상징적 불상이었다. 승탑은 사제 간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여주는 선종불교의 상징물이었다. 지금 한국도시의 야경 속에 무수히 빛나는 십자가만큼이나 신라, 고려시대 이 땅은 도처에 사찰이 있었다. 세워진 불탑과 범종의 숫자는 아마 지금의 십자가를 능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의 탑돌이와 범종의 은은한 종소리는 고달픈 영혼들에겐 생명의 쉼터 같은 것이었다. 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불탑은 전쟁에서 죽은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의 가련한 죽음을 그 탑돌이를 통해 불국정토(佛國淨土)로 안내하는 간절한 기원의 상징물이었다. 그 시절의 신라인들에게 탑은 지금의 우리에겐 국립묘지에 세워진 현충탑 이상의 것이었다.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은은한 범종소리, 교회당의 청량한 새벽 종소리가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그 소리의 부활이 바로 고달픈 세상살이에 건조해진 우리 네 마음을 적시는 한 줄기 단비가 되고 그윽한 낭만과 여유로움의 꽃밭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요컨대, 누구에게나 사물을 보는 인식의 수준은 바로 인격의 수준이 된다. 종교를 떠나서 모든 조형물은 의미 있는 상대적 가치를 다 지니고 있다. 누구도 함부로 폄하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편견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진실로 세상을 깊게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세계에서 언제나 종교의 벽은 없는 것이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