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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자/이기적 자선

광성교회 1 1462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와 칼럼입니다. 남을 돕는 문제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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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자 소리없는 기부



1988년, 한 기업인이 13억 달러의 재산으로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 순위 23위에 올랐다. 그는 명단과 함께 실린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부호 명단에서 빠지고 싶다면 돈을 잃거나, 남에게 줘버리거나, 죽는 방법밖에 없다."


그는 변호사에게 이런 쪽지를 건넸다. "첫째 경우는 생길 것 같지 않고, 셋째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만 남는다."


이 둘째 방법을 실천에 옮긴 이가 세계적 면세점 체인 DFS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피니(76.사진)다. 그는 지금까지 26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학교와 병원에 기부하는 등 모두 40억 달러(약 4조원)를 자선재단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본인 명의의 집도, 자동차도 없이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팔뚝에는 15달러(약 1만4000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식사는 뉴욕의 허름한 식당에서 해결한다. 비행기도 이코노미 클래스만 탄다.


최근 한 언론인이 피니의 삶을 다룬 책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를 펴내면서 그의 '베푸는 삶'이 미국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31년 뉴저지주의 아일랜드 이민자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남에게 잘 베풀며 살았으나 가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제대한 뒤 코넬대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했다. 학교를 마치고 선원들에게 주류를 파는 사업을 시작한 그는 호텔에서 일하던 대학 동창 로버트 밀러와 함께 면세점 사업을 해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82년 피니는 보유 주식의 일부를 그가 남몰래 세운 애틀랜틱 자선재단에 넘겼고, 96년 프랑스 기업 LVMH로부터 면세점 인수 제안이 들어오자 본격적인 자선활동에 나서기 위해 일에서 손을 뗐다.


이를 계기로 피니의 자선활동은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97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는 모두 6억 달러(약 5600억원)를 자선단체에 익명으로 기부해 '얼굴 없는 천사'로만 알려졌지만, 면세점 체인을 인수한 업체 관계자가 회계장부에서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 내역을 발견하고 언론에 제보한 것이다. 그는 당시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기부 이유를 밝힌 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본지 97년 1월 26일자).


피니는 그 뒤에도 미국은 물론 베트남.아일랜드 등의 자선단체에 기부를 계속했다. 그는 사후 기부가 대세이던 미국 사회에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기'의 모델을 제시해 빌 게이츠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소리도 듣는다. 피니는 자신과 아내, 다섯 자녀에게 필요한 일정 액수의 돈만 남기고 모두 기부했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막내딸 다이앤은 자선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피니는 자신의 검소한 생활과 관련, "15달러짜리 시계도 잘 가는데 왜 비싼 게 필요한가"라며 "드넓은 저택이나 문이 여섯 개 달린 캐딜락은 나의 체질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설적 자선사업가인 앤드루 카네기가 했던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스럽다"는 말을 늘 새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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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자선에도 박수를

 

에이즈에 걸린 아기, 굶주린 원주민, 집 없이 떠도는 난민. 이들이 스타들의 필수 ‘액세서리’가 됐다.”


 얼마 전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유명 인사들 사이에 아프리카 돕기라는 새로운 유행이 등장했다고 비아냥대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리 삐딱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몇 명이 무슨 일로 죽어 나가든 아무 관심 없던 게 세상 인심이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가고, 록스타 보노가 가니 다들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히 돈도 따라갔다. 일례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갈 때 늘 부자 군단과 동행하는데, 이 중 톰 헌터란 이가 2년간 내놓은 돈만 1억 달러(약 930억원)다. 사정이 이런데 명사들이 그곳 사람들 배경으로 생색용 사진 좀 찍는다고 손가락질할 필요가 있을까.


 순수한 이타심만 기대하고 있기엔 지구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이가 너무 많아 하는 얘기다. 해마다 아프리카 남부에선 5000원짜리 모기장이 없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아이가 100만~300만 명이나 된다. 에티오피아는 전체 인구의 1.2%가 실명(失明)해 시각장애인 비율이 세계 1위다. 1000~2000원어치 약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기니벌레병(GWD) 때문이란다. 그러니 제 이름 알리려 나선 게 뻔한 ‘이기적인’ 자선에도 눈 질끈 감고 박수 좀 보내 주면 안 되겠나.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부자들이 좋은 일에 돈 쓰는 것에조차 별로 관대한 편이 아니다. 염불(자선)보다 잿밥(명성)에 연연하는 한낱 쇼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손끝이 닳도록 일해 번 돈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 ‘떡장사 할머니’에게 더 많은 찬사가 쏟아지는지 모른다. 물론 칭송을 바라지 않는 할머니들의 숭고한 마음씨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길 바라는 건 무리 아닐까.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는 전 역사를 통해 존재한 예가 없다”는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대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니 말이다.


 법을 어긴 한 대기업 회장에 대해 최근 법원이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공헌하라”며 8400억원을 내라고 한 판결을 놓고 여론이 분분하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했다지만 그가 옥살이를 면한 것을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입맛이 씁쓸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국민 정서를 의식한 듯 검찰은 ‘부자가 돈 쓰는 걸 통상적인 사회봉사로 보기 힘들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회장에게 남을 위해 돈 쓰는 기쁨을 제대로 배우도록 하면 어떨까. 그러면 나중엔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갑을 척척 열게 되지 않을까.


 전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워런 버핏(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2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재단을 만든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이런 외국 부호 얘기가 나오면 흔히들 혀를 차며 한탄한다. “왜 우리나라엔 저런 훌륭한 부자가 없는 거야”라고. 그런데 한번 뒤집어 보자. 아무리 부자라도 자기 돈이 아깝긴 매한가지일 터다. 그러니 돈을 쓰게 만들자면 의당 그 대신 얻는 게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다.


 예컨대 미국 대학 명칭 중엔 거액 기부자의 이름을 딴 것이 많다. 하버드대만 해도 상당한 책과 재산을 기부한 성직자 존 하버드를 기려 명명됐다. 우리 관념으론 설령 천만금을 냈다 해도 ‘김아무개대학’ ‘이아무개대학’ 한다면 거부감부터 들 것 같다. 하지만 껄끄러운 심정을 누르고 돈 쓰는 부자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때 우리도 한국판 버핏과 게이츠를 갖게 되지 않을는지. 박수 받기 좋아하는 건 동서고금에 두루 통하는 인지상정일 테니 하는 말이다.


1 Comments
이석순 2007.09.22 19:44  
부자들은 기부를 해도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기부하고도 최소한 몇십억 몇백억은 남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 마침 집세 받은게 있어서 은행에 가던 길에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부족해서 살림을 잘 꾸리지 못하는 지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며
안타까운 마음에 추석 명절인데 고기라도 사 먹으라고 돈 만원을 줬습니다.
돈 만원에 비해 주머니의 손은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한 오만원 줄까 아니야 삼만원 ... 결국 만원까지  부자에 대해.. 기부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하게 하네요